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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 수기

이천청솔 합격후기

이천에 위치한 신성스럽고 편안한 용면의 언덕!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조O석

본문

안녕하세요.

서울대학교 수시 일반전형을 통해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합격한 조O석입니다. 제가 1학년 때 받았던 모의고사 성적표에는 외국어 4등급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것이 6등급 이하였습니다. 특히 수리영역에서는 8등급을 받았고요. 2년이 흐른 지금 저는 수능에서 평균 1.3등급을 받고 서울대학교에 입교하게 되었습니다. 차마 제 머리가 좋았기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이 제 IQ를 말해주지 않으실 정도로 저는 뒤처진 학생이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어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다만 제가 3학년 동안 걸어온 길을 보시면, 무엇을 해내는 데 있어서 우리를 가로막는 장벽에 맞서고, 때로는 굴복하면서도 다른 길을 모색하는 한 사람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2학년 겨울방학이 됐을 때 저는 그제야 성큼 한 발작 앞으로 다가온 대학입시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드려서 상담을 받았지만, 도대체가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아무 대비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2학년 동안 풀었던 수학 문제집은 달랑 한 권이었고, 그것도 기본서였습니다. 최악은 언어와 외국어는 학교 교제 이외에는 푼 것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때까지 저는 탐구영역을 정하지 않았었습니다. 갑자기 머리가 터질듯이 아파왔습니다. 모의고사 성적은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제 이름값(서울대)을 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날 거의 현기증이 난 것같이 혼자 시름시름 앓다가 잠에 곯아떨어진 것이 기억이 납니다.

최대한 긍정적인 마음을 먹고, 저는 A4용지에다가 영역별로 풀어야 할 문제집들을 적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1년 동안의 시간에 적절히 분배했습니다. 제일 먼저 푼 것은 기출문제집이었고, 그 다음부터 시기별로 나누어서 발행되는 EBS 문제집을 풀었습니다. 겨울방학 동안은 청솔기숙학원본원을 다녔지만, 그 후로는 인터넷 강의도 없이 혼자서 공부했습니다. 놀라운 행운아였던 제게는 다행히도 내신을 열심히 준비했던 것이 수능대비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겨울방학 때 다녔던 청솔기숙학원 본원을 통해 하루도 빠짐없이 공부하는 습관이 단번에 잡혔고, 저는 열정으로 공부시간을 태워나갔습니다.

그 결과, 3학년이 된 후 첫 모의고사에서 언,수,외 모두 2등급을 맞을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에게 도취되어 담임선생님께 찾아간 저는 엄청난 비난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 성적 갖고는 서울대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며 저를 호되게 나무라셨습니다. 사실은 칭찬을 바랬던 제게 그것은 큰 충격이었고, 그날부터 저는 조금 더 공부에 열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장시간 공부에 익숙하지 않던 저는 1시간마다 공부를 쉬고 눈을 휴식해야 했습니다. 그것이 거슬려 몇 개의 안경점과 안과를 찾아다녔지만 해법이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눈을 게슴츠레 뜨고 공부를 하게 됐고, 그것은 굉장히 거슬리는 것이었습니다.

한 달이 지나고, 고통을 인내한 결과는 4월 모의고사에서 빛을 봤습니다.국사를 제외한 전과목에서 1등급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영광에 익숙치 않던 저는 곧바로 자만에 빠졌고, 안타깝게도 저는 주말마다 친구들과 놀러가는 등 우매한 짓을 행했습니다. 그러한 우매함은 6월 모의고사에서 제 뒤통수를 쳤습니다. 첫 평가원 모의고사, 재수생들이 참여한 실질적 모의고사, 수능까지 등급을 유지하면 장한 모의고사 등의 압박감을 주는 수식어가 붙은 평가에서 저는 아주 나자빠진 것입니다. 급한 마음에 채점을 하고 바로 모의고사 공부를 하려 했지만, 기말고사가 이미 3주 앞으로 다가온 때였습니다. 중간고사 때 기대에 미치지 못한 내신 성적 또한 저를 정말 고통스럽게 고문했습니다. 심장이 어느 때보다 급박하게 뛰었으며, 차라리 영원한 정지를 내리고 싶다고 소리치는 듯했습니다.

이러한 알 수 없는 거대한 공포의 정체는 이미 앞선 겨울방학 때 맛보았던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일단 삼키고 보면 조금은 거북하겠지만 결국에는 소화가 되어버립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계획을 세웠습니다. 모의고사에 대한 생각은 의식적으로 거부했습니다. 그러한 고민은 시기에 부적절했던 것입니다. 저는 초조함도 긴장도 흥분도 없는 고요한 상태에서 기말고사를 대비했지만, 침대에 들기 전에는 항상 ‘전교 1등’이라는 짧은 주문을 외웠습니다. 그때 저는 평소에는 친구로서 떠오르는 얼굴들이 모두 결연한 인상을 지은 경쟁자로서 떠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전체적으로 난이도가 쉽게 출제되어 순위 변동이 없을 것이라는 불길한 소문을 듣고 드디어 기말고사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목표는 전과목 100점이었지만, 그것에 가깝게 다가가는 것에서 만족해야만 했습니다. 결과는 약간 애매했습니다. 등급평균으로는 2등, 점수평균으로는 1등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성적표에는 전교 1등으로 나오게 되었고, 저는 환희에 찬 상태로 7월 모의고사에 임했습니다. 아쉽게 수리가 2등급이 나왔지만 다시 본래 컨디션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여름방학이 되고 저는 다시 살아난 의지로 공부를 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타오르는 태양이 제게 마법을 건 듯 저는 공부가 싫어졌고, 문제집만 보면 토가 나올 정도로 변해버렸습니다. 충분히 했다 해서 시계를 보면 원망스런 분침은 반 바퀴도 돌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2학년 때 자유롭게 바깥을 나닐던 것이 자꾸만 생각이 나서 창문만 보면 그것이 스크린이 되어 낭만적인 영상이 펼쳐졌습니다. 그러한 자극을 외면하고 저는 말 그대로 고통스럽게 공부했습니다. 그때가 되니 이상한 의문들이 제게 다가왔습니다. ‘왜 이렇게도 무의미한 반복을 되풀이해야 할까?’ ‘왜 그들이 설계한 사회에 이유 없이 순응해야 하지?’ ‘이 정도만 해도 삶이 지긋지긋한데, 계속 이렇게 살다보면 살아있는 시체가 되는 것 아니야?’ 그것들은 어떠한 결단력과 용기를 동반한 듯 보였고, 저는 이 땅에서 공중부양을 한 듯 다른 나라의 시민이 돼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위험한 생각들의 단편성을 깨닫게 해준 것은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생각하는 모든 것이 죄다 ‘개똥 철학’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한 종류의 생각은 진리와 허망의 경계에 자리를 잡아 자칫 진리로 착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오히려 진리를 외면하기 위한 거짓된 수단에 불과하다고 하셨습니다. 한순간에 저는 ‘개똥이’라고 불리어지게 됐습니다. 하나 더, 아버지는 설령 제가 생각하는 것이 진실일지라도 그 진실을 만세에 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앞에 있는 목표부터 이루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맞는 말이었습니다. 현실적 요건으로 봤을 때, 제가 가진 인식을 사람들이 수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사회적 지위가 필요했습니다. 다시 저는 불을 지폈고, 다행히 9월, 제 2차 평가원 모의고사에서는 수리 2등급을 제외하면 평소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능이 가까워질수록 제 체력은 그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집에서 혼자서 공부할 때 찾아오는 그 꽉찬 듯 한 공허함은 저를 엄마가 오기를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가족 누군가의 발소리 혹은 전화 벨 소리를 애타게 기다리도록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입맛이 없어져 마지막 스퍼트를 내기 위한 체력을 보충해야 할 때 저는 오히려 체중을 잃고 있었습니다. 다시 분침은 전보다 느려졌고, 저는 ‘노트르담 파리’에 등장하는 부주교의 영벌이 어떠한지 알 것 같았습니다. 수능이 2주 앞으로 다가왔을 때 다행히 저는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숨겨진 힘을 낼 수 있었고, 1주 전에 남산도서관에서 실제 수능처럼 치른 모의고사에서는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내며 기다리고 기다리던 수능을 가벼운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오랜 발걸음은 허무하도록 짧은 수능시험을 마지막으로 끝을 맺었고,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지만 체면은 유지할 정도의 점수를 받게 됐습니다. 수능이 끝나고 지나간 나날에 대해서는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지나가버려 할 말이 없습니다. 단지 수능 직후에 응시했던 고려대 면접과 논술고사, 또 서울대 면접의 장면들이 흐릿하게 기억이 납니다. 아마 해묵은 짐을 내려놓은 제 마음은 아직도 달콤한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나 봅니다.

다시 찾은 여유로 하루하루를 전에 없이 풍요롭게 지내던 중 며칠 전에 수시 합격자 발표가 있었습니다. 청솔기숙학원 본원에서 재수를 하고 있는 누나(조민선 문과 1반)를 통해 제가 고려대학교 예비명단에 있을 뿐 합격자는 아니라는 사실을 들은 아버지는 ‘마다가스카의 펭귄’을 보며 해맑게 웃고 있는 저를 연민에 가득찬 눈으로 보셨을 겁니다. 그 당시에는 저만 그 사실을 몰랐거든요. 고려대학교가 안정권이라고 생각하셨던 아버지는 연세대학교와 서울대학교는 기대하기 힘들겠다고 이미 마음속으로 생각을 끝낸 상태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담임선생님을 통해 전해들은 서울대학교 합격 소식은 평소에는 눈물을 보이시지 않던 아버지의 눈에 별빛을 쏘아 올렸습니다. ‘아빠, 만약 내가 다 떨어져서 자살하면 어떻게 할 거야?’라는 짓궂은 농담을 통해서도 긴장된 상태의 마음이 순식간에 안도가 되며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절대로 피자를 먹지 않으시는 아버지는 저와 함께 곧바로 피자헛으로 갔고, 저는 아버지와 포옹과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수험생의 마음이 아니었던 저는 그렇게도 바래왔던 서울대 합격의 의미와 그 환희를 절반도 느끼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가족들의 흥에 부흥하느라고 좋아하는 척 연기를 할 정도입니다. 대학에 기뻐하기에는 제 마음은 여유를 즐기기에 너무 바쁩니다.

끝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수험생활을 하면서 찾아오는 온갖 회의, 좌절, 유혹에 빠질지라도 반성을 통해 개선을 할지언정 자신에게 유감스러운 실망을 표하지는 마시길 바랍니다. 수험생활에서 가장 치명적인 독은 자신에 대한 불신입니다. 우리는 고작 17~19살입니다. 지혜는 혼란 속에서 잉태된다고 합니다. 실수의 과정은 필수적입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저 또한 하나의 목표에 걸맞은 하나의 양식만을 추구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만가지로 채색된 인간의 인생에 있어서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성은 철저히 취하고 후회는 버리며, 자신을 책망하는 데 쓰는 힘을 새롭게 변형된 계획을 짜는 데 쓰시기를 바랍니다.

괴테의 ‘파우스트’라는 책에는 ‘인간은 노력하는 한 헤매인다.’(원래는 ‘헤맨다’지만 운율을 위해 이처럼 표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언제나 방황을 진보의 증거로 삼으시길 바라며, 여러분들의 합격을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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